회원 로그인 창


따끈따끈! 신착 전자책

더보기

  • 무제
  • 무제
    녹색 심리 | e퍼플

콘텐츠 상세보기
토마스 만 작품집


토마스 만 작품집

토마스 만 | 종합출판 범우(주)

출간일
2021-03-19
파일형태
ePub
용량
지원 기기
PC 스마트폰태블릿PC
대출현황
보유1, 대출0, 예약중0
전자책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설치가 안되시나요?전자책 프로그램 수동 설치
콘텐츠 소개
저자 소개
한줄서평

콘텐츠 소개

이 책을 읽는 분에게 토마스 만은 1875년 6월 6일 자유시 뤼벡L?beck의 유복한 상가의 차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소설가 하인리히 만의 동생이기도 하다. 조부는 네덜란드 영사領事, 아버지는 시市 참사회원이며 부시장이었다. 어머니는 남미南美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독일인과 포르투갈 계 브라질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나 라틴 민족적 기질이어서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견실한 시민성을, 어머니에게서 예술성을 이어받은 토마스 만은 선천적으로 시민성과 예술가 기질, 생生, 자연과 정신의 대립을 자기 자신에게서 절실히 느끼게 되고, 그것을 당면한 자기의 문학적 과제로 삼게 된 것이다. 토마스 만의 어린 시절은 고생을 모르는 행복한 것이었고, 특히 여름 방학에 발트 해 연안 해변에서 지내는 습관은 몽상적인 소년의 마음에 태만의 희열과 자연 속으로 자기 자신을 융합시키는 감미한 도취를 맛보게 하여 후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친근하게 될 소지素地를 마련했다. 학교의 규율은 이러한 소년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어서 그는 학과를 게을리하고 문학 서적을 탐독하는 일이 많았으며 성격에 맞지 않는 실업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890년에 부친이 사망하여 상회商會는 해산되고, 가족은 뮌헨으로 이사하여 토마스 만도 그곳으로 가서 일년 가량 보험회사 견습사원으로 근무했다. 이 시절에 처녀작 《전락Gefallen》을 자연주의 기관지 《사회》에 발표하여 청년층의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시인 데멜과 친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자연주의적인 것이라고 하나 토마스 만 자신이 전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회사를 사직하고 저널리스트가 되려고 뮌헨 대학의 청강생이 되었다. 그 후 로마에 체류 중이던 형 하인리히의 유인誘引으로 이탈리아에 가서 부친의 유산으로 형은 회화 공부를 하고, 동생은 북유럽 문학, 러시아 문학을 탐독하며 소설의 시작試作을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과 과정을 거쳐 토마스 만은 작가로 데뷔한 이래 수많은 작품을 썼고, 192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나치스 집권으로 1935년에는 또다시 도미하여 정주定住하게 되었고, 1936년 독일 시민권과 본 대학 명예 박사 학위의 칭호를 박탈당했다. 종전終戰후, 1952년 스위스로 돌아와 취리히 호반에서 살다가 1955년 8월 12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80세였다. 취리히 근교 키르히베르크 묘지에 안장安葬됐다. 하버드 대학이 토마스 만에게 명예 철학 박사 학위을 수여했을 때 그 이유서에는 ‘작가 토마스 만이 우리 시민 동포를 위해서 인생의 의미를 해명해 주었다’고 씌어 있었다. 1929년 노벨 문학상이 그에게 수여된 것도 실로 그의 인생 행적이 세상에 희열喜悅과 위안을 나누어 주고 인생을 유지하는 동시에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새로운 견해와 감정을 초래한 데 기인한다고 본다. 토마스 만은 독일 문화의 품 안에서 호흡하고 성장한 가장 독일적인 작가이며, 자연주의가 독일 문단의 주류를 형성하는 한편 신낭만주의를 표방하여 반자연주의적 경향이 진출하기 시작한 19세기 말에 창작 활동을 개시하여 독일 낭만주의의 극복과 괴테로 대표되는 독일 휴머니즘의 부활을 지향하여 20세기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이룩한 것이다. 그의 창작 활동은 질과 양에 있어서 근대 작가 중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고, 특히 무궁무진한 언어의 구사驅使는 실로 언어의 거장巨匠이라는 찬사가 타당하리라고 본다. 토마스 만 자신도 언어에 대한 국민적 책임을 절감하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지대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이 점이 바로 독일 문학도가 그로 인해서 겪어야만 할 노고의 하나이기도 하다고 고충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그의 문장이 고차원적 중량을 느끼게 하고 어휘는 정신되어 있음을 절감하는 것은 새로운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새로워지는 감이 든다. 61세에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을 때 그는 언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어의 신비는 위대하다. 언어와 그 순수 정확성에 대한 책임은 상징적인 정신적 성질의 것이며, 결코 예술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요, 큰 도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언어에 대한 책임은 책임 그 자체, 인간적인 책임 그 자체이며 자국민自國民을 위해서 책임을 담당하는 것, 인류 앞에서 자국민의 형자形姿를 순수하게 보전하는 것이다. 언어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인간적인 것의 통일성이 체험되고 인간 문제의 전체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나, 이 전체성은 오늘날 특히 정신적, 예술적,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분리하여 후자와 결연하고, 고귀한 ‘문학적인 것’ 속에 고립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참된 전체성이야말로 휴머니티 그 자체이며, 인간적인 것의 부분적인 영역에 불과한 정치라든지 국가라든지 하는 것을 전체화하려고 기도하는 것은 이 참된 전체성에 위배되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따라서 문체도 평이주의로 변했지만 고전적 시대 작가로서 토마스 만의 작품, 특히 그 언어와 표현의 정교함은 영원히 보존될 불후의 세계 문학적 업적이라 하겠다. 여기서 토마스 만의 문학적 발전을 개관槪觀하면 19세 때1894년에 처녀작 단편 소설 《전락》을 발표하였다. 30세1905년까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 작품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각이 나타나 있다. 바로 인간이 정신적으로 세련되면 반면에 육체가 허약해지고 명랑한 삶의 환희가 사라지며 그 대신에 죽음에 대한 암담한 동경이 생긴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왕성한 생활력이란 정신적 영점을 의미하는 것이며 생명력의 상실, 생으로부터의 탈락 과정이 바로 인간의 정신적 과정과 병행하게 된다는 생生과 정신, 일반 시민과 예술가를 대립 관계에 두는 인생관이 표현된 것이다. 정신과 미의 관계도 대립면에서 관찰되고 정신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대개가 못생기고 꾀죄죄한 외모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평범하고 별로 정신적 구애가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활발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작품 《토니오 크뢰거1903년》의 주인공 토니오의 구겨진 스타일과, 금발머리에 파란 눈의 한스 한센의 건강한 자태에서 대조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것은 삶보다는 오히려 죽음에 공감하는 낭만주의 생활 감정의 영향이며 시민 사회에 있어서 예술과 예술가의 고립적인 존재에서 생기는 양심의 반영이다. 결혼 생활의 수확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작품 《대공전하大公殿下》에서 제1차 대전을 겪고 쓴 《마의 산》의 완성까지를 중기로 볼 수 있다. 중기에서는 초기의 대립적 인생관의 극복이 시도되고 성취하기에 이르렀다. 건강하고 무난하며 행복하고 명랑한 시민생활 세계에 대립하여 정신과 인식의 세계에 산다고 생각했으며 “예술가는 인간이 되어서 느끼기 시작하면 파멸이다”, “문학은 천직이 아니라 저주이다《토니오 크뢰거》에서”라고 말했던 고독한 예술가 토마스 만은 《대공전하》에서 사랑과 결혼에 의해서 고립, 고독의 탈을 벗어나 자타自他를 결합하고 삶의 세계와 타협하고자 힘쓰게 된다. 《마의 산》에서는 이러한 대립적 인생관이 더욱 극복되었고 대립을 지배하고 전진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적인 삶의 태도라는 사상이 발전되었다. 이것은 토마스 만의 사상이 일대 전환기에 처한 것을 의미한다. 즉 독일 낭만주의의 보수주의保守主義에서 이탈한 것을 뜻한다. 죽음에 대한 공감을 민주주의적인 생에 대한 호의로 변화시키는 정신의 변형變形을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봉사를 임무로 하고 있다. 생과 정신, 문명과 문화 등 대립하는 수많은 것의 중간, 조화된 중도中道에서 비로소 참된 인간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리하여 토마스 만은 유럽 시민 문화의 전통에서 매몰되어 가고 있던 인간성의 이념을 구출하고, 이것을 정화淨化하여 전 세계에 다시 제시한 것이며, 삶에 대한 결의를 정신적 지주支柱로 삼고 발전하는 중도로서의 인간성에 토마스 만 문학의 핵심 휴머니즘이 확립된 것이다. 독일 소설 문학을 세계적 수준에 높이는 임무를 다하고 고귀한 인간관을 수립하는 데 노력한 공으로 1929년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50세를 전기轉期로 하여 토마스 만의 후기가 시작된다. 초기의 낭만주의적 페시미즘은 이제 완전히 억압되고 중기를 거쳐 성숙한 휴머니즘이 전개된다. 여기서 토마스 만은 생과 정신, 다시 말하면 자연과 영혼의 조화를 이룩한 사람을 찾아서 인생의 모든 대립을 실지로 극복하고 지배하며 살아온 사람을 축복하며 묘사한다. 《요셉 형제》, 《선택된 인간》, 《바이마르의 로테》 등 주요 작품의 각 주인공 요셉은 정치가로서, 그레고리우스는 종교가로서, 괴테는 예술가로서 각기 자기 인생에 대립되는 여러 문제를 융합하고 극복해 나간다. 그들은 자연과 정신, 본능과 지성, 현실과 인식을 대립 항쟁對立抗爭시키거나 일방一方을 부정하고 타방他方만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하는 힘을 조화 협조시켜서 인간성 전체를 옹호하면서 전진하는 인간, 실로 인간다운 인간인 것이다.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은 각기 개인적 자아, 즉 주관성과 사회적 자아, 즉 객관성이 조화하는 것이다. 주관과 객관이 대립하거나 일방이 타방을 억압하는 한 인간성의 전면적 해방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즉 개인은 사회적 자각을 높이면서 개체와 집단과의 대립을 지양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적 발전이 이상적으로 실현된 경우를 토마스 만은 상기한 후기 대표작에서 묘사한 것이다. 인간 사회 문제에 책임을 느끼는 이상 정치적 태도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후, 토마스 만이 히틀러의 전체주의 발전을 위한 독재 정치에 반기를 든 것도 당연한 일이다. 토마스 만은 인간성의 존엄을 인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이라는 점을 간파看破하고 민주주의는 휴머니즘의 별명에 불과하다고 보았기에 일반적 존재 의식과 가치만을 부여하는 히틀러 나치즘에 굴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정치 고찰에서 작품 《파우스트 박사》는 인간성의 민주적 발전에 절망적 반동이었던 나치즘이라는 악마적 비합리주의가 독일에 발생한 원인과 과정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정신과 문화 속에서 발전한 가장 독일적인 작가였던 토마스 만이 미국으로 망명을 하고 미국 시민으로서, 유럽의 중립국에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육성하는 신생 독일 공화국을 주시하며 생애를 마친 것은 소극적이라기보다는 가장 활동적이며, 인내라기보다는 영웅적 권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편협한 대중大衆이 그를 도피적이라고 빈축하고 있으나 실은 토마스 만이야말로 독일적 작품을 씀으로써 독일의 민주화에 적극 참여했던 것이며, 세계를 정복하여 독일화하려던 히틀러의 무모한 정책에 반해서 휴머니즘 옹호의 전사로서 영웅적인 투쟁을 전개했고 독일이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대립자, 파괴자가 아니라 동조자, 공헌자로서 인류의 자유와 번영에 기여할 길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 소개한 《토니오 크뢰거》와 《트리스탄》은 대표적인 초기 작품으로 특히 《토니오 크뢰거》는 토마스 만의 전 작품을 세계 독자와 역사라는 여과기에 걸친다면 마지막까지 남을 작품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일 만큼 유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예술성과 시민성의 대립은 결코 토마스 만의 전 작품을 통해서 일관된 테마는 아니다. 이것은 다만 초기 작품 ? 《트리스탄》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작가 자신도 가장 애착심이 가는 작품이라고 했듯이 독자 여러분도, 특히 문학을 전공하겠다고 나선 젊은 학도는 자기를 ‘한스 한센’ 또는 그 반대로 ‘토니오’ 중 어느 타이프의 성격 소유자인가를 내심으로 비교하면서 문학에 대한 적성 여부를 다시 한 번 검토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 출발하는 거울로 삼아 본다면 작품의 가치나 흥미의 도가 한층 높아지리라고 본다. 《트리스탄》에서는 더욱 양극의 대립 대조가 뚜렷하여 흥미가 있으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를 미리 읽어 두기 바란다. 예비 지식 없이는 문맥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노파심에서 특히 바그너 작의 2막을 정독해 두기 바란다. 여러 구절이 그대로 인용되고 있는 까닭에서이다. 《마리오와 마술사》는 작품 발표 직후, 당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의해서 판매 금지가 되었을 만큼 파시즘을 폭로한 것이다. 토마스 만 자신이 후에 이 작품을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말했다. 그런 시점에서 본다면 작품도 이해가 되고 심리 묘사가 끝까지 독자의 긴장감을 이끌어감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

저자소개

1875년 6월 6일, 독일의 북부 뤼베크의 부유한 상가에서 세습적인 곡물상인의 차남으로, 그리고 하인리히 만의 동생으로 출생. 1893년 18세. 실업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뮌헨으로 옮겨 화재 보험회사의 견습사원으로 입사. 1894년 19세. 견습사원을 그만두고 뮌헨에 있는 두 대학의 청강생으로 들어감. 첫 작품 《전락轉落》을 발표하여 시인 R. 데메르의 인정을 받음. 1896년 21세. 하인리히와 함께 이탈리아로 가서 머뭄. 1897년 22세. 장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쓰기 시작. 1898년 23세. 뮌헨으로 귀환. 《키 작은 프리데만 씨》 출판. 1901년 26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출판. 이 작품의 출판으로 점차 부유해짐. 1903년 28세. 단편집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을 씀. 1904년 29세. 《피오렌짜》를 완성함. 1905년 30세. 뮌헨 대학의 수학 교수 프링크스하임의 딸 카타리나와 결혼. 1909년 34세. 장편 《대공전하》를 씀. 고독한 예술가적 존재를 사랑과 결혼에 의하여 삶의 세계와 손을 잡게 하는 작품. 1912년 37세. 죽음에 매혹되어 몰락하는 예술가의 비극을 묘사한 《베니스에서 죽다》를 씀. 1913년 38세. 이해 여름부터 《마의 산》을 쓰기 시작함. 1914년 39세. 1차 세계대전이 터짐. 정치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없던 그는 창작을 거의 하지 못하고 독일 낭만주의적인 보수주의 입장으로 돌아감. 전쟁중 서유럽의 데모크라시를 독일에 도입하려고 한 진보적인 형 하인리히에 반대하여 정신 예술의 정치화에 항의함. 1918년 43세. 반데모크라시 논집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을 2년 반쯤 써 나감. 그러나 결국엔 데모크라시에 대한 반항이 잘못임을 깨달음. 1919년 44세. 단편 《주인과 개》를 씀. 1920년 45세. 서사시 《어린이의 노래》를 씀. 1922년 47세. 10월 《독일 공화국에 대해서》라는 주제로 강연. 아직 약체인 독일 공화국을 옹호하여 독일 청년층에 데모크라시의 지지를 권함.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문화 사절 자격으로 국외로 강연 여행을 다님. 1923년 48세. 《괴테와 톨스토이》를 씀. 1924년 49세. 《마의 산》 탈고. 독일의 낭만주의적인 ‘죽음과의 공감’을 민주주의적인 ‘삶에 대한 봉사’로 전환함으로써 중년의 만이 갖는 세계관의 전환을 나타낸 교양 소설. 1926년 51세. 《무질서와 어린 고뇌》를 씀. 문화 사절로서 외국을 여행한 성세한 보고서인 《파리 방문기》 집필. 4부작 《요셉과 그의 형제들》 착수. 1929년 54세. 노벨 문학상 수상. 1930년 55세. 《이성에 호소한다》를 강연하여 시민 계급에게 사회민주당과 손을 잡고 나치스에 대항할 것을 호소함. 단편 《마리오와 마술사》를 써서 파시즘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 최후까지를 예언함. 1933년 58세. 1월, 히틀러가 수상으로 임명되자 그는 2월 국외로 강연 여행을 떠난 채 망명. 1936년 61세.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함. 1937년 62세. 격월간지 《척도와 가치》를 간행 39년까지 하여 자유로워야 할 독일 문화를 옹호함. 1938년 63세. 정치 평론집 《유럽에 고함》을 내어 파시즘의 타도를 위해 휴머니즘은 전투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설파. 이해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2년간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를 지냄. 한편 《도래해야할 데모크라시의 승리》를 15개 도시를 순방하며 강연함. 1939년 64세. 장편 《바이마르의 로테》를 집필하여 괴테를 주인공으로 하여 천재의 내면을 그리면서 히틀러 독재와는 다른 괴테적인 독일을 그림. 1940년 65세. 단편 《바뀌어 붙여진 머리》를 집필. 인도의 전설을 빌어 생과 전신과의 조화적 종합의 어려움을 그림. 이해부터 45년까지 《독일의 청취자 여러분》으로 히틀러 타도를 호소함. 1943년 68세. 단편 《계율》을 집필, 모세의 십계명을 이야기했음. 1944년 69세. 미국 시민권을 획득함. 1947년 72세. 《파우스트 박사》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의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 를 집필. 천재적인 작곡가가 악마와 결탁하여 몰락하는 비극을 그려 추상적이고 신비적인 독일혼을 파헤쳤으며, 이성과 철학주의 정신에 대한 절망적인 반항이었던 나치즘이라는 악마적인 비합리주의가 독일에 대두하게 된 원인과 과정을 추구하였음. 1949년 74세. 17년 만에 독일을 방문함. 1951년 76세. 장편 《선택된 인간》을 집필, 근친상간의 죄를 속죄하여 은총을 받게 되는 인간성을 묘사함. 1952년 77세. 이해 말 스위스로 이주함. 1954년 79세. 그의 마지막 장편 《사기사 펠릭스 크룰의 고백》, 《회고록의 제 1부》 집필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수준 높은 웃음을 가져다 주는 것’을 염원한 작가의 마지막 작품임. 1955년 80세. 실러의 150주년 기념 강연 《실러 시론詩論》에서 세계평화와 독일의 통일을 염원함. 이해 8월 12일, 심장병으로 사망. 취리히의 근교에 묻힘.

한줄서평

  • 10
  • 8
  • 6
  • 4
  • 2

(한글 40자이내)
리뷰쓰기
한줄 서평 리스트
평점 한줄 리뷰 작성자 작성일 추천수

등록된 서평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