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산하
김성열 시인과 필자는 父女之間이면서 함께 文學을 생각하고 시를 쓰는 동반자 관계에 있다. 필자는 시인 아버지와 함께 文學을 논하고 시를 창조하는 운명적인 삶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나의 장래를 예견하고 양육 방향을 설정했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한글을 해득한 이후 처음으로 문장의 뜻을 음미했던 글은 아버지의 자작 동요였다. 그 이후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이 땅의 한 시인으로 태어날 때까지 아버지는 여러 번 나를 거듭 나게 하였다. 아버지의 첫 시집 “그리운 山河”의 해설을 써 보라는 지시(?)를 받고 두렵고 송구스런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반면, 한편으로 즐거운 비명 같은 환희와, 올 것이 왔구나하는 당위성도 느꼈다. 이래저래 뒤엉킨 감정을 가다듬고 해설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김성열 시인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시정신이 치열하고, 그만큼 필자에 대한 문학수업의 지도 방침도 확고하고 준엄했다. 필자가 대학의 문예창작과에 입학식을 마친 그날 내 전용 원고지를 인쇄하여 리어카에 가득 싣고 집에 왔다. 이 원고지를 다 메우고 난 후에 나와 문학을 이야기 하자고 했다. 그 후 12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그 원고지를 다 못 채우고 출가외인이 되어 이렇게 시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새삼스럽기 그지없다. 아버지는 20대의 대학 시절에 이미 소설을 발표하고 중년에는 시와 수필을 쓰면서 동인활동과 문학단체의 임원을 역임하면서도 문단 데뷔의 통과의례 과정을 밟지 않았으며, 시와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계속해 왔다. 필자가 문예지에 추천 완료 된 그 다음 달에 곧바로 등단 과정을 거쳤으니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계획적이고 확고한 敎育的 信念이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자식이 父母의 정신세계를 뛰어넘을 때 그 家門이 융성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딸이 한 달 먼저 문단에 나갔다고 아버지의 정신세계틀 뛰어넘을 수 있을까만은 외형적인 모티브를 제공함으로써 목표에 이르고자 하는 계기를 주고자 의도적인 智略이었을 것이고, 이로써 딸의 시와 정신세계를 더 넓고 심오하게 터잡아주는 준엄한 게시를 묵언실천으로 나에게 전달하였다.
山牛김성열(金性烈) 시인
△전북 남원 출생(1939)
△건국대 정외과 수료
△건국대신문 단편소설 <唯情> 당선(1961). ≪시문학≫에 수필 <父子> 발표(1985). ≪문예사조≫ 시조(1993), 문학평론(2003), 소설(2007) 신인상
△문예사조문인협회 이사장. ≪문예사조≫ 편집국장.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전26권) 편찬위원. 한국시대사전(자료집필) 편집위원.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춘천 신촌중 교감으로 명예퇴직. (전)경기대 사회교육원 시창작과 주임교수
△한국자유시인상, 문예사조문학상 대상, 세계시가야금관왕관상 수상
△시집 『그리운 산하』, 『귀향일기』, 『농기(農旗)』
자서
제1부 토말기행(土末紀行)
토말기행
한 강 (1)
한 강 (2)
안과진료
백무동 유감
실상사 석장승
동진강 다리에서
소양호
산의 소묘 (1)
산의 소묘 (2)
산의 소묘 (3)
실상사 상층 석탑
백무동계곡
제2부 생활
귀뚜라미
가을
아버지
겨울밤
큰사위
어느 날 뻐꾸기 울음
아들
아내<1>
아내<2>
아내<3>
딸
생활
성묘
제3부 그림자
등넝쿨
뻐꾸기<1>
뻐꾸기<2>
뻐꾸기<3>
뻐꾸기<4>
퇴근길
4월
여인의 노래
홍매화
춘색
그림자
국기에 대한 맹세
자화상
모과
빗소리
고독
제4부 꽃
비 온 뒤
풋대추
꽃
여자
국립묘지
그리움
난
중년남자
술기운
자정
후회
절두산 비둘기
운명
고향 산에 올라
시외버스 터미널
이슬비
묵뫼
거리의 간판
여관의 불빛
시장
일요일
백조
가을<2>
가을<3>
백자 항아리
꽃씨
제5부 그해 여름
살아가는 모습
꽃병
그해 여름
가을 어느 날
햇살
추석전야
이사
백로절(白露節)
어느 날 밤에
제6부 그리운 산하
1. 거기 있는 산
2. 노래하는 실개천
3. 무심한 잡초
4. 생기 찬 수목
서평 | 無心한 山野에 꽃피우는 詩心_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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