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년 막걸리
- 저자
- 채선후 저
- 출판사
- 타임비
- 출판일
- 2013-09-25
- 등록일
- 2014-01-21
- 파일포맷
- EPUB
- 파일크기
- 1MB
- 공급사
- 예스이십사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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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최종숙의 <설거지>
최종숙은 지금 당장 수필 판에서 활동해도 성공할 역량을 갖췄다. 올해의 장원이다. 소재에서 주제를 이끌어 내는 솜씨가, 아니 능력이 탁월하다.
하루에 적어도 세끼 식사 때마다 해야 하는 게 설거지다. 살아 있다는 것이 들숨을 쉰 다음에 날숨을 쉬듯, 먹은 뒤에 싸야 하는 것처럼, 먹은 뒤에는 어쩔 수 없이 설거지를 해야 한다. 설거지를 취미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거지는 전업주부에겐 업보이기도 하다. 이왕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즐기기!
설거지는 하면 할수록 묘한 즐거움도 있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조용히 내 안에 갇혀진 단어들을 풀어낼 때 책상에 앉아서 쓸 때 보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설거지할 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중략) 조용히 글을 쓰고 싶을 때면 물소리에 문장을 생각해내는 재미도 붙였다. 이것을 특기라고 해도 될까. (중략) 이유는 설거지를 하는 동안은 그 누구도 말을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물소리에 남편의 텔레비전 소리도 묻히고, 개구쟁이 아이들의 또닥거리는 말소리도 묻힌다. 물소리에 가만히 내뱉고 싶은 말들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설거지하면서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날 좀 가만히 놔두라고!’
여기까지라면 너무나 공식에 입각되어 있어 별로다. 이 글이 작품이 되게 하는 변수는 화자가 아파서 남편이 설거지를 한 며칠을 기술하면서이다.
남편이 쨍그렁 소리를 내면서 설거지를 했었는데 아마도 누워 있는 나에게 차마 하지 못한 불만의 표시일 것이다. 또, 풀리지 않는 돈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표시일 것이다. 유독 손에 물 묻히기 싫어하는 남편이라서 설거지는 더욱 더 싫어한다. 그런 남편도 이제 설거지를 하면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는가 보다.
‘날 좀 가만히 놔두라고!’
어쩌면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은 가슴 속 찌꺼기들을 설거지 소리에 씻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부의 사랑이 에둘러 잘 표현되었다. 최고의 사랑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감사다. 내가 살림에 지쳐 나 혼자의 공간을 찾아 설거지를 하면서 외쳤던 소리가 ‘날 좀 가만히 놔두라고!’였다. 그런데 삶의 전장에서 돌아와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서 혼자 있게 되자 외치는 소리는 똑 같다. ‘날 좀 가만히 놔두라고!’
이것은 내가 설거지 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하는 추측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바람이 나무를 거세게 흔들고 있다. 바람도 설거지를 하고 있는가보다.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씻어내야 할 많은 찌꺼기들을 설거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하루 종일 힘차게 설거지 한 것을 보니 남은 겨울은 순풍이 불 것도 같다.
“웬수 같던 남편도 설거지하는 뒷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그 안쓰러움에 내 모습을 담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설거지 동업자가 된 동지애일까.” 동지애를 느끼는 부부라면 남은 여생은 순풍이겠다. 순풍의 고마움은 폭풍우나 역풍을 맞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폭풍우나 역풍은 언제까지 부는 것이 아니다. 한때 불다가 지나간다는 걸 안다면 그렇게 무서운 것도 아니다. 순풍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것이라면 고마운 것이기도 하다. 태풍이 불어서 바다 속 깊숙한 곳까지 뒤집어주지 않으면 바다는 건강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이렇게 글을 끝맺었다.
나는 오늘도 설거지 한다.
그 물소리를 따라 오늘 하루를 듣는다. 며칠 앓아누운 탓에 손이 가야 할 설거지가 많다. 이렇게 설거지를 했으니 마음도 후련해져야 되는데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을 보니 내 설거지통이 작은가 보다.
그래도 좋다. 바람은 또 불 것이고, 설거지는 또 하면 되니까.
끝없는 긍정성이 우리는 신나게 한다. 결코 작다고 할 수만은 없는 소재와 주제를 무거워 처지지 않게 간수하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어떤 주제의 글도 산뜻하게 아우러낼 것 같은 믿음을 준다. 최고다.
-문학평론가 김 종완교수-
서울 디지털대 산문연습 과목 합평원고
